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닫기

우연한 소비는 없다

저자 소개

김현호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사업 팀장으로 사업 기획, 투자, 플랫폼 협업 업무를 하고 있다. 특히 AI, 메타버스, 블록체인 기술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결합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다. 삼성물산, CJ ENM에서 영업 전략, 해외 상품, 콘텐츠 커머스 사업을 담당했으며, 미디어 삼성 기자, 삼성 C&T 리포터, CJ ENM 사내 기자로 활동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 4회 금상을 수상했고, 저서로《우연한 소비는 없다》가 있다. 다양한 비즈니스에 적용 가능한 NFT의 성장에 주목하고 있으며, 각 산업군과 NFT의 상관 관계, 투자처로서의 가능성 부분을 집필했다.

목차

  1. 들어가는 글 :: 물건의 뒤에서
  2. 제1화 MD의 안식처
  3. :: 어쩌다 MD가 된 사람의 일상
  4. 제2화 MD의 커피
  5. :: 미팅을 맞이하는 MD의 자세
  6. 제3화 MD의 장바구니
  7. :: 장바구니란 표현은 어디서 왔을까
  8. 제4화 MD의 명함
  9. :: 삼성에서 CJ로 간 MD
  10. 제5화 MD의 엥겔 지수
  11. :: 엥겔 지수와 앵그리 지수의 상관관계
  12. 제6화 MD의 이중생활
  13. :: 이중생활도 하기 나름
  14. 제7화 MD의 썸네일
  15. :: 엄지손톱만한 게 뭐라고
  16. 제8화 MD의 속도
  17. :: 배송 표현이 이래도 돼
  18. 제9화 MD의 고백
  19. :: 비주류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20. 제10화 MD의 품평
  21. :: 씨 뿌리는 MD
  22. 제11화 MD의 문장
  23. :: 업을 대하는 나만의 프레임, 문장
  24. 제12화 MD의 소비
  25. :: 호모 콘수무스의 삶
  26. 제13화 MD의 숫자
  27. :: 숫자로 이루어진 세계
  28. 제14화 MD의 꽃점
  29. :: 같은 물건의 다른 삶
  30. 제15화 MD의 계절
  31. :: MD의 계절은 간주 점프
  32. 제16화 MD의 사진
  33. ::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한 수고
  34. 제17화 MD의 케어라벨
  35. :: 옷을 입으며 거슬리는 느낌이 든다면
  36. 제18화 MD의 스카프
  37. ::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카)프
  38. 제19화 MD의 그날
  39. :: 내가 태어난 날의 옷을 아시나요
  40. 제20화 MD의 쇼핑백
  41. :: 쇼핑백이 알려주는 취향의 기록
  42. 제21화 MD의 빨래
  43. :: 패션의 완성은 빨래
  44. 제22화 MD의 상담
  45. :: 대학내일. 대학, 내 일
  46. 제23화 MD의 출근길
  47. :: 지옥철과 아모르파티
  48. 제24화 MD의 방송
  49. :: 카메라 뒤편 사람들
  50. 제25화 MD의 공간
  51. :: 장서의 괴로움
  52. 제26화 MD의 카드
  53. :: 취향을 가리키는 카드 내역서
  54. 제27화 MD의 예찬
  55. :: 미의美衣 예찬
  56. 제28화 MD의 이론
  57. :: 결혼식장 방문 이론
  58. 제29화 MD의 정리
  59. :: 스타일링의 시작은 정리
  60. 제30화 MD의 가게
  61. :: 떴다 사라지는 가게
  62. 제31화 MD의 봄
  63.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파는 건 MD의 일
  64. 마치는 글 :: 책의 뒤에서

책 속으로

오늘도 누군가의 장바구니에 내가 준비한 상품들이 담기겠지. 모니터와 스마트폰 화면을 마주할 고객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대들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좀 설레셨는지. 자자, 충분히 설렘을 즐겨주시고, 그렇다면 결제도. 집에서 택배를 받는 기쁨을 누려주셨으면 합니다. 이건 흔한 MD의 자그마한 바람입니다만.
--- 「MD의 장바구니」중에서

사각의 자그마한 썸네일을 다듬는 일, 우리네 MD의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품이 아닌 손품을 판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MD는 어떤 이미지가 상품을 가장 도드라지게 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세페이지를 클릭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다.
--- 「MD의 썸네일」중에서

잘 다듬어진 하나의 문장은 멋들어지게 잘 차려입은 착장이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실제로 무릎을 치진 않습니다만) 문장을 보면 런웨이 무대 위 쇼피스 착장이 떠오른다. 그런 문장이 모여 있는 책과 문단은 한 시즌 패션쇼 같은 느낌이랄까. 삐쩍 마른 감정을 띵하게 울리는 명문장은 오뜨꾸튀르 피날레 착장을 떠올리게 한다.
--- 「MD의 문장」중에서

갖고 싶은 물건이 (또!) 생겼다. MD는 견물생심에 취약하다. 보는 물건이 많으니 갖고 싶은 물건 또한 많다. 이럴 땐 보통의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초록창을 열어 검색. 최저가를 찾는다. 아, 여긴 배송비가 따로 붙네.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여기는 적립금을 더 주는구나. 그런데 비싸네. 여긴 사은품이 꽤 괜찮은데? 그렇다면 여기서 사야겠다. 아, 아니다 자주 사던 곳에서 사야지. 곧 고객 등급이 올라가니까….
--- 「MD의 꽃 점」중에서

MD에게 계절은 늘 간주 점프다. 1절이 끝나고 2절이 흘러나오기 전, 연주되는 간주 들을 틈 없이 바로 2절이다. 여름엔 가을을, 아니 더 나아가 겨울을 맞닥뜨린다. 여름을 갈아 넣어 가을 상품을 준비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모를 심어 두면 그 계절에 어느새 훌쩍 자라 있는 상품의 실체를 만나게 된다. 이때는 추수를 맞이하는 농부의 심정.
--- 「MD의 계절」중에서

각진 박스 패키징이 되어 있는 새 상품을 쇼핑백에 담는 맛도 물론 좋지만, 쇼핑백 안의 내용물이 쇼핑백과 닿을 때 느껴지는 출렁임과 흔들거림을 사랑한다. 옷을 감싸는 투명 폴리백이 쇼핑백 안에서 빛을 튕겨낼 때는 더욱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니기 귀찮아하는 사람에게도 기분 좋은 귀찮음이겠다. 매일 이런 식으로 귀찮으면 소원이 없겠네요.
--- 「MD의 쇼핑백」중에서

스위스산 치즈처럼 구멍이 송송 뚫린 통장 잔고와 나의 취향을 등가 교환했던 지난 일 년. 조금은 반성했다. 취향을 좇는답시고 분별없이 소비했으니 남은 건 빚뿐이다. 정리된 취향을 가지치기하기로 했다. 애정하는 것들은 좀 더 뾰족하고 확실하게 하고, 잔가지 같은 소비는 줄이기로. 카드 내역서를 통해 선명해진 취향을 좀 더 누려보기로.
PS. 도통 나의 취향은 무엇인지 헷갈리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일 년치 카드 내역서를 살피는 일을.
--- 「MD의 카드」중에서

김연수 작가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라 말했다. 우리네 MD는 이렇게 말하겠다, ‘파는 건 MD의 일’이라고. 어떻게든 팔아야 한다(물론 준비된 좋은 물건을). 허나 고객과 MD는 건너기 힘든 아득한 심연을 사이에 두고 있다. 그 심연 안에서 빛 없이 감각을 벼렸던 심해어魚처럼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을 뿐이다.
---「MD의 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