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말
헌책방에 내가 쓴 책을 팔았던 그날 밤에는 죽고 싶었다. 며칠 뒤, 다시 그곳을 찾아갔을 때 내 책이 팔리고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살고 싶었다. 살아서 만나고 싶었다. 내게도 값을 매겨준 그대들, 겨우 나와 같은 세상들.
김요비. 책 『그때 못한 말』 『안녕 보고 싶은 밤이야』 『그런 사랑을 해요』를 썼고, 아이콘 『사랑을 했다』 박혜원 『시든 꽃에 물을 주듯』 원티드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노래』 갓세븐 『PIOSON』 등 가사를 썼다. 필명 ‘못말mot_mal’은 ‘moment of truth’에서 따온 것으로 ‘진실의 순간에 못한 말’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차가운 물에 몸을 담가도 게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는 것에 대해 반론하지 않겠죠. (중략) 이제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더 익숙하니까. 사소한 호기심에조차 많은 걸 지불해야 한다는 걸 잘 아니까. 이따금 서녘에 노을이나 건네기로 해요.
--- p.22
가진 전부를 쏟았으나 끝끝내 초라해졌던 날들 그러나 모든 시절의 끝에는 결국 그런 순간만이 남아 기억의 정원을 빛낸다
--- p.45
가끔은 전화해도 괜찮을까. (중략) 어떤 말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떤 말이라도 해 보고 싶었다는 그런 알량한 진심 같은 거 자라나게 절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 혼자라는 이유로 나를 미워하지 않게 될 때까지만. 이 밤이 조금 옅어질 그때까지만. 가끔, 전화해도 괜찮을까.
--- p.46
그때는 왜 그랬을까.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왜 우리는 그토록 서로를 미워하고 밀어냈을까. 지쳐 울던 마음과 그 많던 밤을 이내 모른 척 등 돌렸을까.
--- p.51
가슴에 멍이 들고, 새벽을 헤매면서도 순간을 영원이라 믿으며 진실히 웃을 수 있었던 건, 다른 무엇이 아닌 그게 사랑이었기 때문이라고. 오롯이, 사랑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이야.
--- p.85
만약 네가 화분에 꽃씨를 심었다면 너는 그것을 빛 잘 드는 창가에 두겠지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을 만큼 물도 줄 거고 꽃잎이 보고 싶다고 억지로 봉오리를 열거나 재촉하지 않으며 그저 피어날 때를 기다릴 거야 혹시, 너는 알고 있니? 꽃을 기르는 법과 마음을 기르는 법은 다르지 않단다
--- p.150
숨 쉬는 모든 순간이 괴롭고 처절하다 할지라도, 어떻게든 그 순간을 지나오기만 하면 우리는 그 순간들을 딛고 더 눈부신 곳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다. 그리고 그때는 알 수 있다. 내 세상을 버겁게 몰아세우던 그 모든 견딤의 이름들이 사실은 내 손바닥만큼도 크지 않은 것들이었다는 것을.
--- p.166
그러나 내가 다만 어둠 속에 잠겨 있다 할지라도 내 안에 빛을 그려 담대히 걸음을 내디딘다면 그곳엔 내 삶 가장 찬란한 아침이 움터 온다 모든 것은 내 의지만큼만 변화하고 빛난다
--- p.172
정말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된다고 저 넓은 하늘을 맘껏 날 수 있는 때가 가장 완벽한 그때가 분명 나에게도 반드시 나에게도 찾아올 거라고 그러나 날개는 펴지지 않았고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내가 지나온 모든 날이 바로 그때였다는 걸
--- p.176
자주 길을 잃는 너에게 나는 말해 주고 싶어. 이따금 길을 잃어버리곤 하는 일, 그거 썩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오히려, 그런 순간들이 네가 너다울 수 있는 곳으로. 더 근사한 순간으로 너를 데려가 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길 잃은 너를 부추기지 않아도 괜찮다고. 미워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 p.185
잠시 가쁜 숨을 고르고 주위를 둘러봐요 지금 당신은 꽤나 멋진 순간순간을 지나오고 있는지도 몰라요
--- p.186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흔들렸어요 내가 기억하는 나의 이십 대는 그래요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흔들리고 부서지며 나에게 맞는 파도를, 나만의 바다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 p.235
작은 순간을 기억하기를 조금 더 바보처럼 웃어보기를 긴 밤의 끝은 다행일 테니
--- 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