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말 모를 꽃을 한 송이 산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시들어버릴 꽃이 무슨 이야기를 담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됐다. 내가 주고 싶은 건 그저 한 줄기의 꽃송이보다는 좀 더 대단한 거라서. 오른 손에 네게 줄 꽃을 들고 가는 길이 신이 나는 걸 보니 선물은 너만 받은 것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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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오늘도 우리 사이에는 ‘굳이 내일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내일이 되면 또 내일 알아야 하는 것들을 만들어 내겠지. 끊기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더라. 그렇게 서로가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귀여운 노력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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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것에 기대하지 않고 가는 것에 의미 두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사라진 동네 카페 하나에도 울고불고하는 나를 보며 난 참 쿨하지 못한 사람이다 생각한다. 이제는 미적지근한 나임을 인정할 테니 눈 비비고 감았다 다시 뜨면 짠하고 돌아와 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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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부끄럽지만 너에게 참 미안하다고. 그동안 채찍질을 빙자한 난도질로 생긴 많은 흉터들에 연고를 발라 본다. 새살이 돋고 나면 당근 한 조각 쥐어주어야겠다. 아삭 소리를 내며 당근을 씹는 내 입 모양부터 사랑해 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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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외로움을 모르고 살 수 없고, 결국은 사람들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것이 또 사람이라지만, 그럼에도 난 혼자 있는 시간이 귀하고 소중하다. 사람들 사이에 치이고 지칠 때 온전히 나에게 전부를 쏟을 수 있는 시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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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미움 받는 건 무서워. 그런데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나까지 날 미워하면 안 되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등을 돌려도 나는 내 편이어야 되더라고. 그래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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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지하철에서 픽 쓰러져서 응급실에 온 게 죄송할 정도로 죽음과 삶의 경계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다. 몸이 다쳐서 온 사람도, 마음까지 다쳐서 온 사람도 있었다. 커튼 사이로 보았던 그들은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다. 모두가 아픈 사람들이라 그랬을까. 대신에 약간의 동질감 비슷한 걸 느끼는 것 같았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알아줄 수 있는 것. 응급실은 일종의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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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눈 감고 기도하는 대신 널 바라보면서 말했다. 눈을 마주치면서 말하면 좀 더 간절해 보이지 않을까 해서. 그렇지만 아마 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지금도 이렇게 바라지 않는 사람이길 바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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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이 편한 것 같아요. 착한 사람이 되는 건 어려워요. 계속 잘못하다가 한 번 잘해주면 갑자기 악당이 매력적인 사람으로 변해요. 그냥 악당으로 살고 싶어요. 적당히 나쁘게 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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