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기로 했어. 우리의 이야기를 담을 거야. 마지막 기억이 헤어짐이라, 주된 이야기는 이별에 관한 것이 될 것 같아. 나는 앞으로 일 년여 간의 시간을 당신과 다시금 이별하는 데 쓸 거야.
--- p.11
세상에 아름답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 우리는 비극에 더 집중해. 무서우니까. 사랑은 항상 낯선 것이니까. 그렇게 두려움이 눈을 가리면, 아름다운 사랑이 잘 보이지 않아.
--- p.32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해요. 같은 차원, 다른 우주에서의 나는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해서 당신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저녁을 마무리하며 어쩌면 당신과 닮은 아이를 낳아 당신과 그랬던 것처럼 그 아이와 투덕거리며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 p.51
적당히 살고 사랑할 걸 그랬어요. 그랬으면 그대와의 이별이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근데 그게 안 돼요. 저는 ‘적당히’가 안 돼요. 영리하게 마음보다 머리를 앞세우는 게 잘 안 돼요. 아마 앞으로도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도 영리하지 못하게 밤바람을 맞으며 우두커니 앉아있네요.
--- p.65
“난 언니의 지질함이 좋아. 허물없이 사랑하고 상처를 내보이는 순수한 모습이 좋아. 숨겨도 계속 쏟아져 나오는 마음이 좋아. 그래서 사랑스러워. 사랑해주고 싶어. 그러니까 더 지질해 줘. 더 사랑하고 그대로 아파하고 그냥 이렇게 있어 줘.”
--- p.73
좋은 이별이 어딨어. 그냥 괜찮은 척, 이성적인 척, 고귀한 척하는 거지. 둘 중 하나지. (중략) 아픔 없는 이별이 어딨어. 좋은 헤어짐이 어딨어.
--- p.81
헤어짐의 순간, 당신에 대한 기대도 놓아 버렸어야 했다. 혹여나 돌아올까 하는 기대가 마음에 둑을 쌓았다. 슬픔은 흘러나가지 못했고 망각은 들어올 자리가 없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기대를 놓을 용기가 없다.
--- p.135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뱉던 당신은 이별의 말도 쉽게 뱉었습니다.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당신에게는 사랑이라는 말이, 그다지 무겁지 않은 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따라서 그 사랑을 끝내는 이별의 말도 가벼이 내뱉을 수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당신에게는 참 가벼웠나 봅니다.
--- p.139
“그 사람의 이번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너에게 돌아올 거라 착각하지는 마. 너와의 헤어짐도 지금의 헤어짐도 굳은 결심에 의한 선택이야. 만약 다시 돌아오더라도 받아 주지마. 신중한 결정을 번복하는 사람을 믿고 사랑을 한다는 건 너무 불안정한 일이잖아"
--- p.146
실수에 등을 돌리는 순간, 그건 실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버립니다. 명백히 상대에게 상처 주는 일을 실수로 포장하는 것밖에 되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반성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기로 ‘선택’하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 p.152
서른이 넘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도 죄야. 그러니까 너를 놓친 걸 후회한다는 그 사람의 말, 그거 나쁜 말이야.
--- p.163
어느 순간 나는 사랑에 수동적인 사람이 되었다.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굳이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이 새로운 사랑을 찾고자 하는 욕구보다 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만큼의 열정이 나에게는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사랑할 자격이 있는 걸까. 호감만 느끼고도 저렇게 열정적이고 용기 있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사랑하고 싶다고 말할 자격이 있나.
--- p.190
최선을 다해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마지막 날이 마치 오늘인 것처럼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간절하고 애절한 마음이 우리의 기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p.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