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일을 할 때, 누구와 있을 때, 무엇을 가졌을 때 가장 행복한가요? 누구나 어떤 계기로든 깊은 행복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어쩌면 한순간에 그것을 잃어본 경험도 있을 테지요. 서른이 되던 해에 백수가 되었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재취업을 하고 또 계약해지가 되는 과정 속에서, 직장은 없지만 직업은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p.8
나와 꼭 맞는 하나의 직업만 찾아야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마치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지 못해 이것저것 건드려보는 사람처럼 비쳐질까봐 부끄러웠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될 것 없잖아요? 당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래서 삶을 보다 가치있게 느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몇 개의 일이든 힘이 닿는 데까지 해보면 좋겠습니다. --- p.11
‘아나운서 같지 않은 애’라는 소리는 나를 한 번 더 기가 막히게 했다. 나는 분명 여자인데 여자 같지 않다더니, 이제 아나운서인데 아나운서 같지 않단다. (중략) 그러니까 이미 아나운서가 된 나는 이제 더이상 그렇게 ‘아나운서 같은 것’들을 따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치 내가 여성이기에 ‘여성 같은’ 행동과 모습을 따라 하거나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없듯이. --- p.29
수백 대 일, 수 천대 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정도의 경쟁력은 뭔가를 따라 하기만 해서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략) 진짜 프로는 늘 세팅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편하게 있다가도 ‘온 에어’ 불빛이 들어오면 ‘반짝’하고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이다. --- p.30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어릴 적부터 꿈꿔 온 일이긴 하지만, 그건 나의 직업일 뿐 나라는 사람을 대표하는 단어가 될 순 없다. 여러 가지 내가 가진 독특하고 입체적인 특징들이 직업적 특성 하나로 단순화되고 평면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p.39
나는 ‘될 놈은 된다’는 뜻의 ‘될놈될’이라는 표현을 패러디한 ‘친놈친’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친해질 사람은 결국 친해지게 되어 있다. 초반에 조금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오해를 받더라도 내 속도로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다. 굳이 억지스럽게 노력하지 않아도 매일 얼굴을 보고 함께 일하면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도록 서로간 조금씩의 공간을 두고 시간을 두면서 기다리면 된다. --- p.75
어느 날인가부터 선배 아나운서들이 하나둘씩 원치 않게 일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이 회사가 개국할 때부터 함께 방송을 만들던 선배들이 떠나가던 뒷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모습은 절망 그 자체였고, 곧 나에게도 불어 닥칠 위기의 복선이었다. ‘열심히 하면 더 잘될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보다는, ‘열심히 하더라도 언젠가는 나도 쫓겨나겠지’라는 생각만 갈수록 선명해졌다. --- p.83
당시 우리 회사 아나운서들의 마음속에는 사물함을 원치 않게 비워야 할 날에 대한 두려움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배는 언제 갑자기 떠나야 할지 몰라서, 혹은 사물함을 비워 놓아야 마음도 비워질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한다. 꽉 찬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자꾸만 우리는 마음을 비우려 노력해야 했을까. --- p.85
갑작스럽게 힘든 일을 겪게 된 사람에게 꼭 ‘괜찮아?’라고 묻지 않아도 된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질문하는 사람도, 질문을 받는 사람도 알기 때문이다. ‘네 괜찮아요’라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상대의 에너지를 아껴주는 것도 참 따뜻한 배려다. --- p.100
잠시 백수 기간을 갖는다고 해서 결코 창피하거나 못난 게 아니라고 반복해서 되새겼다. 신세 한탄을 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이 시간을 보너스 월급, 포상휴가처럼 기꺼이 맞이할 수 있기를. 무엇보다, 혹처럼 쓸 데 없다고 생각했던 이 쉼이 결코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미래의 내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 p.127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삶을 더 탄탄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가끔씩 하늘로 날아오를 필요가 있다. 매일 일상을 보내는 장소로부터 홀로 멀리 떠나오는 것도 좋다. 이렇게 완전히 혼자가 되는 시간들을 통해 나는 마음 속 상처와 짐들을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 p.153
공개적으로 나의 아픈 이야기들을 꺼내 놓기 전에는 이 경험들이 백해무익하다고만 생각했다. 생각하면 화가 나고 가슴 아프기만 했으니까. 하지만 어디에도 쓸 데가 없다고 생각했던 고물 같은 경험담들을 잘 정리해 세상에 내어놓으니 놀랍게도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나의 가장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유튜브 세계에서는 오히려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자원이었다. 앞으로 내 채널을 통해 또래의 사람들과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배우고 지탱해가는 탄탄한 연대를 해나가고 싶다. --- p.174
더 이상 전화로 ‘일주일 후부터 그만 나오면 됩니다’와 같은 말을 듣지 않아도 되고, 그 전화가 언제 걸려올 지 불안해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비련의 ‘을’에서 탈출 한 뒤 지금은 자유로운 ‘정’으로 살고 있어요. 물론 여기서 ‘정’은 제 이름의 ‘정’입니다. 과정이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그때 그렇게 회사를 나오지 않았더라면 결코 개척하지 못했을 새로운 길이니,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 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