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현
1988년. 작가가 태어난 날 하늘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토록 여러 감정에 의연하지 못한 걸까. 그래도 감정은 소모되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은 그런 다양한 감정을 소모하게 하는 가장 단단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사랑하며 소모된 감정을 충전하러 자주 낯선 곳으로 떠난다. 정리해보면 아무래도 사랑이 나를 여행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기에 나는 사랑이 끝나지 않는 한, 계속해서 낯선 곳을 찾아 헤맬 것 같다. 여행 가방을 근 한 달이 지나서야 풀었다. 여행 중 넘어진 무릎은 걸을 때마다 욱신거려 오늘에서야 진료를 받았다. 다사했던 여정을 풀며 반성은 두었고 후회는 치웠으며 뭐라도 달라질 줄 알았던 나는 여전히 조금 게으르고 아직도 조금 미련하다.
P. 65 집으로 돌아와 보니 마음이 한곳이 따끔거렸다.
고개를 숙여 아픈 곳을 내려다보니 핑크색이다.
방금 막 넘어진 아이의 무릎처럼.
P. 109 나는 지난 몇 년간 길을 잃고, 방황하며, 나태했던 내 모습을 받아들인다. 슬픔도 외로움도 원래 내 것인 양 다시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그러자 저기 멀리서 의지가 돌아오고 있는 게 보였다.
다시 만나 반갑다.
마음 맨 아래에 행복의 싹이 튼다. 나는 마음 아래 핀 이 작디작은 행복을 초조함 따위로 절대 짓밟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P. 215 이제는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가끔 한 번씩 탁했던 그곳에 생각날 때가 있다.
그리운 것 같기도 하고 버려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돌아가면 좋겠다 싶다가도 왜 또다시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 걸까? 나는 이곳을 좋아하는데……, 라며 멋쩍어한다.
정말이지 여전히 나는 내가 봐도 이상하다.
P. 221 삶에 의미 없는 건 없다.
내가 살면서 겪은 감정이 이렇게 ‘문장’이 되었듯 말이다.
P. 253 가끔은 나만을 위한 캄캄한 동굴이 있었으면 좋겠다.
상처 난 날에는 그 속에서 가만히 몸을 웅크리고
잠이란 연고를 바를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