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은
쓴다는 것은 내면의 나를 들여다보고, 감정을 세밀히 살피는 일이다. 쓴다는 것은 그래서 마음과 나를 연결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정성껏 메시지를 쓰고, 울리는 전화기에 사랑하는 이의 이름이 뜰 때 행복해지는 마음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보살핀다. 그 글이 읽는 이의 마음에, 입술에 가 닿아 사람 사이의 온기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지은 책으로는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괜찮은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 『여행이거나 사랑이거나』 등이 있다. 2012년 ‘삶의 향기 동서 문학상’ 소설부문을 수상했다. 현재 네이버 오디오클립 ‘윤정은의 책길을 걷다’를 진행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떠나가고, 매일 돌아오는지도 모릅니다. 이 문을 열면서요. 삶이라는 여행을 매일 떠나며, 그 길이 여행임을 망각하고 지냅니다. 문을 닫고 오늘의 여행을 위해 운동화 끈을 동여매 봅니다. 첫눈이 매일 내린다면 설레거나 가슴 시린 추억으로 남지 않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의 안녕을 마음으로 빌며 걸음을 뗍니다.
--- p.8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게 여행이라면, 어쩌면 이 여행의 종착지는 당신인지도 모릅니다. 제아무리 마음이 비행하여도 어김없이 도착은 늘 당신이니까요.
--- p.22
지금 이 해변에 흐르는 경쾌한 음악처럼 춤을 추듯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그 모든 몸짓이 가벼울 수 있을까요. 삶은 꿈이고, 지금 나는 여기에서 꿈을 꿉니다. 깨지 않을 달콤한 꿈을요. 발끝에 닿는 모래처럼, 자유로운 파도처럼 정해진 길 없이 오늘을 춤추듯 살아가는 꿈을 꿉니다.
--- p.27
일하지 않고 놀고 싶어요,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예뻐지고 싶어요, 사람들이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좋아하는 그 아이가 고백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 우리 엄마 아빠 건강하게 해주세요…. 먼저 다녀간 이들의 욕망과 당신의 욕망이 파도에 섞여 누구의 소망인지도 모르게 바다로 흘러갑니다. 가장 먼저 닿는 이의 소망부터 차례차례 이루어 주지 않을까요. 마음껏 욕망하렵니다. 삶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소소한 행복들까지도요.
--- p.72
힘들면 힘들다, 아프면 아프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이야기해야 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해야 할 말을 하라고 우리에겐 언어가 있지요. 정작 도움이 필요하고 힘들 때 혼자 꾹꾹 참는 건 미련함입니다. 물론 타인을 도와주는 마음보다 도움받는 용기가 더 큰 용기일 만치 어렵습니다. 어른이 되면 의젓해져야 한다는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린 슬픔을 안으로 삼키는 법을 먼저 배웠나 봅니다. 습관적 의존이 아닌,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뻗는 용기를 내보기로 해요.
--- p.76
산다는 일에서 만나는 일상과 사건들은 예측할 수 없는 선물과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선물을 받는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니. 대단히 큰 선물을 기대하지 않더라도 하루에 두 번 혹은 세 번을 끼니로 먹으니 매일, 자주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작지만 이토록 확실한 행복이 모여 매일 선물을 받는 다정한 삶을 살 수 있다 생각해요. 고기가 지글지글 익는 걸 기다리며 이토록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걸 보면, 하루치 기쁨을 지금 이 순간에 다 쓴다 해도 아깝지가 않네요.
--- p.112
어디론가 떠나며 들어가는 콧바람은 다디답니다. 휴게소에서 먹는 쥐포와 떡볶이는 왜 이리 맛있을까요. 감격하며 내장산 앞에 도착했고, 가을 갈대를 바라보며 농담을 주고받고는 낄낄대며 산을 오릅니다. 한 시간쯤 올랐나, 전집에 들어가 김밥과 파전을 시키곤 산바람과 함께 바삭하고 따뜻한 음식들을 먹으며 오랜만의 산행에 놀란 다리 근육을 진정시킵니다. 단풍을 놀이까지 가서 보냐고 투덜대지만, 실은 너무도 좋네요. 이래서 계절을 핑계로 여행을 떠나나 봅니다. 봄이니 꽃놀이를 가고, 여름이니 물놀이를 가고, 가을이니 단풍놀이를 가고, 겨울이니 눈놀이를 가면서요.
--- p.144
눈앞에 있는 순간이 아름다운 줄 모르고 멀리서 봐야만 아름다운 줄 알다니. 실수하고 후회하고 어지러운 날들도 모여 아름다운 미래가 되어줄 것입니다. ‘아름답다’의 기준은 어차피 내가 만드는 것이니까요. 잘 지내온 얼룩도 아름답다 생각한다면, 아름다운 것입니다. 철거 위기에 놓여 있던 도로가 이토록 아름다운 공원이 되었듯이요. 용기가 생깁니다. 실수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용기 말입니다.
--- p.200
사실 그리 생각하지 않지만 일부러 아름다운 날이라 읊조리며 오른팔과 왼팔을 교차 시켜 나를 안아줍니다. 토닥토닥, 참 잘했어. 괜찮아. 금방 지나갈 거야. 잘될 거야.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팔을 쓰다듬으며 듣고 싶은 말들을 들려줍니다. 서서히 마음의 온도가 오르기 시작합니다.
--- p.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