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할 각오 없이는 무엇과도 작별하지 못한다. 그리워할 각오가 됐다면, 작별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신호다. 좋은 글을 써야지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작별을 향해 당차게 걸어갈 용기를 주고 싶다. 건들거리며 시니컬하게 걸어간다면 더욱 좋겠지. 작별은 어렵고 또 불안한 거니까.
--- p.24
아직은 당장 손에 잡힐 듯 선명한 기억이지만, 갈수록 희미해져 간다. 측두엽은 기억을 편집하고 편집하다 마침내는 썩 많은 걸 남겨두지 않겠지. 그 황량한 정취를 느끼기 위한 과정은 점점 더 복잡한 절차를 요구하면서도 이전만큼의 향수를 일으키지는 못하겠지. 이내 기억 속 세계에 내리는 비에 속옷까지 젖기란 아예 불가능해질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허망하다. 노스텔지어는 역시 통증에 가까운 걸까.
--- p.72
‘알아서 할게’의 미학이 세상에 널리 통용되었으면 좋겠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어련히 알아서 할 일들이 세상엔 많은데, 그런 걸 일일이 참견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그만큼이나 많기 때문이다. 다소 쌀쌀맞아 보이겠지만, 용기를 내 ‘알아서 할게’라 말하자. 너도 나도 그런 말을 대수롭지 않게 하다 보면 ‘알아서 할게’ 쯤은 그다지 쌀쌀맞은 말이 아니게 되지 않을까.
--- p.92
나이는 쌓이기만 하는 거라 줄어드는 법이 없고, 젊음은 얼음이나 사탕 같은 거라서 탄생 이후엔 손실뿐. 정말 절실하게 알고 싶다. 왜 아름다운 건 죄다 찰나에만 머물까. 있잖아, 사람은 지혜롭지 못해서 한번 달구나, 하고 생각해 버리면 시도 때도 없이 핥게 되어 있어. 젊음은 그런 식으로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 버리는 거야. 아프니까 청춘 같은 소리를 하면, 그저 영혼 없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짓겠지만, 말마따나 청춘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 뿐이기에 아픈 게 맞긴 해.
--- p.95
일단은 즐거운 일이라 했다. 추억을 물고 늘어져 잠시 감상에 젖어보는 건 마치 술에 취하는 것과 비슷해서 벌컥벌컥 들이킬 때는 한없이 즐겁기만 한데, 일단 흥이 고조 되고 난 다음엔 어지간히 숙취가 지독하다.
--- p.157
나는 낭만을 언제나, 어디에나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다만, 그게 늘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수히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 일상에 녹아 있지만, 그러니만큼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 못 보고 지나쳐 보내기 십상이다.
--- p.160
모든 변화에는 완숙기가 필요한 걸까. 익숙해지고 보면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일들이 많다. 깨달음이란 늦거나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이라서 불필요한 신경을 죽어라 썼구나 하는 생각은 늘 나중에야 든다.
--- p.219
낭만. 적어두고 바라만 봐도, 소리 내 발음해보기만 해도 어딘가 간드러지는 울림이 있다. 어쩐지 낭만, 낭만 하다 보면 사랑, 사랑 같은 말은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 p.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