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닫기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자 소개

김정

보도채널 아나운서로 일했다. 원치 않게 방송 일을 그만둔 후로는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사는 중이다. 부당한 해고를 당할 일이 없는, 상처받지 않고 즐겁게 지속가능한, 재미있으면서 의미있는 일을 추구한다. 유튜브 채널 [김아나의 이중생활]을 운영하고 있다.

목차

  1. Prologue
  2. 솔직함은 나의 무기?
  3. 중간 인상
  4. 여자 아나운서 같은 게 뭔데요
  5. 고해성사
  6. 퉁치지 말아주세요!
  7. 아빠의 편지
  8. 초고화질 현실
  9. 적업일치
  10. 저희 그냥 뉴스하게 해주세요
  11. 이게 진짜 생방송이지!
  12. 색칠공부
  13. 당신은 대체 가능한가요
  14. 지옥이 지옥인 이유
  15. 플랜C
  16. 어떤 선물
  17. 위로 없는 위로
  18. 새벽의 저주
  19. 잠자는 숲 속의 아나운서
  20. 마지막 뉴스
  21. 뜨겁고 시원한 순댓국
  22. 혹부리 여인
  23. 재벌 2세 남자와 나의 공통점
  24. 일의 법칙
  25.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26. 몽롱한 홍콩
  27. 혼자 탈게요
  28. 메모리카드 부자
  29. 원본의 삶
  30. 고물의 재발견
  31. 피로는 무시의 어머니
  32. 미선과 스페인
  33. 묻지마 직업
  34. 직업 수집가
  35. 필연적인 우연
  36. 왓 스튜던츠 원트
  37. 워나밸
  38. 착한 학생 콤플렉스
  39. 79MHz_친구 주파수
  40. 저도 기둥 할래요
  41. 구슬 아이디어
  42. Epilogue

책 속으로

당신은 어떤 일을 할 때, 누구와 있을 때, 무엇을 가졌을 때 가장 행복한가요? 누구나 어떤 계기로든 깊은 행복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어쩌면 한순간에 그것을 잃어본 경험도 있을 테지요. 서른이 되던 해에 백수가 되었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재취업을 하고 또 계약해지가 되는 과정 속에서, 직장은 없지만 직업은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p.8

나와 꼭 맞는 하나의 직업만 찾아야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마치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지 못해 이것저것 건드려보는 사람처럼 비쳐질까봐 부끄러웠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될 것 없잖아요? 당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래서 삶을 보다 가치있게 느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몇 개의 일이든 힘이 닿는 데까지 해보면 좋겠습니다. --- p.11

‘아나운서 같지 않은 애’라는 소리는 나를 한 번 더 기가 막히게 했다. 나는 분명 여자인데 여자 같지 않다더니, 이제 아나운서인데 아나운서 같지 않단다. (중략) 그러니까 이미 아나운서가 된 나는 이제 더이상 그렇게 ‘아나운서 같은 것’들을 따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치 내가 여성이기에 ‘여성 같은’ 행동과 모습을 따라 하거나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없듯이. --- p.29

수백 대 일, 수 천대 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정도의 경쟁력은 뭔가를 따라 하기만 해서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략) 진짜 프로는 늘 세팅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편하게 있다가도 ‘온 에어’ 불빛이 들어오면 ‘반짝’하고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이다. --- p.30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어릴 적부터 꿈꿔 온 일이긴 하지만, 그건 나의 직업일 뿐 나라는 사람을 대표하는 단어가 될 순 없다. 여러 가지 내가 가진 독특하고 입체적인 특징들이 직업적 특성 하나로 단순화되고 평면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p.39

나는 ‘될 놈은 된다’는 뜻의 ‘될놈될’이라는 표현을 패러디한 ‘친놈친’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친해질 사람은 결국 친해지게 되어 있다. 초반에 조금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오해를 받더라도 내 속도로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다. 굳이 억지스럽게 노력하지 않아도 매일 얼굴을 보고 함께 일하면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도록 서로간 조금씩의 공간을 두고 시간을 두면서 기다리면 된다. --- p.75

어느 날인가부터 선배 아나운서들이 하나둘씩 원치 않게 일을 그만두기 시작했다.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이 회사가 개국할 때부터 함께 방송을 만들던 선배들이 떠나가던 뒷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모습은 절망 그 자체였고, 곧 나에게도 불어 닥칠 위기의 복선이었다. ‘열심히 하면 더 잘될 수 있을 거야’라는 마음보다는, ‘열심히 하더라도 언젠가는 나도 쫓겨나겠지’라는 생각만 갈수록 선명해졌다. --- p.83

당시 우리 회사 아나운서들의 마음속에는 사물함을 원치 않게 비워야 할 날에 대한 두려움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배는 언제 갑자기 떠나야 할지 몰라서, 혹은 사물함을 비워 놓아야 마음도 비워질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한다. 꽉 찬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자꾸만 우리는 마음을 비우려 노력해야 했을까. --- p.85

갑작스럽게 힘든 일을 겪게 된 사람에게 꼭 ‘괜찮아?’라고 묻지 않아도 된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질문하는 사람도, 질문을 받는 사람도 알기 때문이다. ‘네 괜찮아요’라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상대의 에너지를 아껴주는 것도 참 따뜻한 배려다. --- p.100

잠시 백수 기간을 갖는다고 해서 결코 창피하거나 못난 게 아니라고 반복해서 되새겼다. 신세 한탄을 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이 시간을 보너스 월급, 포상휴가처럼 기꺼이 맞이할 수 있기를. 무엇보다, 혹처럼 쓸 데 없다고 생각했던 이 쉼이 결코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미래의 내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 p.127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삶을 더 탄탄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가끔씩 하늘로 날아오를 필요가 있다. 매일 일상을 보내는 장소로부터 홀로 멀리 떠나오는 것도 좋다. 이렇게 완전히 혼자가 되는 시간들을 통해 나는 마음 속 상처와 짐들을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 p.153

공개적으로 나의 아픈 이야기들을 꺼내 놓기 전에는 이 경험들이 백해무익하다고만 생각했다. 생각하면 화가 나고 가슴 아프기만 했으니까. 하지만 어디에도 쓸 데가 없다고 생각했던 고물 같은 경험담들을 잘 정리해 세상에 내어놓으니 놀랍게도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나의 가장 큰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유튜브 세계에서는 오히려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자원이었다. 앞으로 내 채널을 통해 또래의 사람들과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배우고 지탱해가는 탄탄한 연대를 해나가고 싶다. --- p.174

더 이상 전화로 ‘일주일 후부터 그만 나오면 됩니다’와 같은 말을 듣지 않아도 되고, 그 전화가 언제 걸려올 지 불안해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비련의 ‘을’에서 탈출 한 뒤 지금은 자유로운 ‘정’으로 살고 있어요. 물론 여기서 ‘정’은 제 이름의 ‘정’입니다. 과정이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그때 그렇게 회사를 나오지 않았더라면 결코 개척하지 못했을 새로운 길이니,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 p.216